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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정착기

이래서 나는 세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작성자 김상구
  • 작성일 2021-04-27
  • 조회수 309

나의 세종특별자치시 정착기

- 이래서 나는 세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작년에 한갑을 넘긴 세 자식을 둔 한 집의 가장이다. 고향은 부산이고 12녀의 자식들 중 첫째와 둘째는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고 늦둥이 겸 막내는 아직 출가 전이다.

세종으로 이사 온지는 201410월로 올해가 만 8년 되는 해가 된다.

현직에서 은퇴하기 전 옛날 직장이 한 곳에 2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는 곳이라 결혼 후에는 약 23, 결혼 전까지 포함하면 28번의 이사를 다녔다.

주민초본을 변동사항을 전부 포함하여 발급받아 보면 여섯장 이상 된다. 어떨 때는 등본을 받아 보는 분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 본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전라도 쪽만 제외하고 우리나라 전국을 전부 다녔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한곳에 2년 정도 머물게 되면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나만 이러는게 아니고 우리 집 마눌님도(난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여자의 인권이 신장되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마눌님이나 회장님으로 호칭한다. 글 읽는 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마찬가지였다. 아는 지인들은 우리를 보고 니네들은 역마살이 끼었다라고 놀리기도 하였다.

정착기를 써는 서두에 이렇게 나의 이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 놓는 것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종시와 내가 28번을 이사하면서 거주하였던 도시(물론 농촌지역이 더 많다)와 비교해 보기 위함이다. 30년 전의 도시와 현재의 도시를 비교하는 것은 이상하지만 그때의 감정 그대로 솔직 담백하게 정착기를 써 보고자 한다.

 

처음 대전에서 세종시로 이사 온 곳은 종촌동이었다. 이사 올 때는 세종시가 우리나라 수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로 한참 들썩이다가 이런 모든 정치적인 것이 잠잠 해질 때 였다. 한참 수도문제로 시끄러울 때 울 집 마눌님은 세종시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대전에 살던 옆집, 뒷집 아줌마들과 함께 세종을 들락거렸고 역시나 아직까지 오픈기념하는 슈퍼에서 라면 2봉지를 추첨해서 공짜로 준다는 응모지에 수십번 응모해 보았지만 나, 마눌님 둘다 당첨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파트 당첨은 되지 않았고 결국 울 마눌님은 아파트 당첨은 체념한 듯 다른 사람의 당첨된 아파트에 거금의 프리미엄을 주고 아파트를 구매하여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다라는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면서 세종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출근문제로 금산에서 하던 직장일을 그만두고 같이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세종으로 이사 오는 그날, 세상에나 그렇게 황량하더라니 지금의 정부청사자리는 공사판이었고 아파트는 하자 때문에 이쪽 저쪽에서 하자보수하라는 스피커 소리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보였다. 이 것 보다도 더 황당한 것은 머리깍는 문제였다. 아무리 미장원을 찿아도 보이지 않고 인터넷을 서핑해도 세종이라는 말도 나오질 않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지금의 첫마을 상가였다. 대전에서는 염색하고 이발하면 만오천 정도였는데 세종시는 이발하는 데만 이만오천원 머리씻겨주면 3000원 추가, 염색하면 45천원, 세상에나....지금도 난 염색을 하지 않는다. 아마, 그때의 충격때문이리라. 또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던 울 마눌님은 엄청 답답해 보였다. 기타 시장보는 문제, 목욕하는 문제, 세종으로 이사 온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이렇게 정착기를 써다보니 혹 난민일기를 쓴 것인지 오해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아니다. 이글은 나의 세종특별자치시 정착기임을 다시 한번 밝혀두는 바이다.

이사 온 것을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먼저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를 찾아가서 우리 아파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가를 물어 보았고 관리소장은 동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을 권유하여 동대표가 뭘 하는 것인지도 모른채 단독출마, 당선되어 동대표로 활동하게 되었다. 동대표를 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아파트의 현안문제, 입주민들이 요구하는 일들에 대해서 동대표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등 나름대로 나의 공동체에 대한 첫 활동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마눌님도 아파트 놀이터, 아파트 공터 등을 통해서 그 곳에 나와 있는 아파트 입주민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등 나름대로 공동체 활동을 영위 해 나가는 등 세종시의 첫 정착활동은 공동체 활동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아파트 동대표 활동을 하면서 주민센타의 주민자치위원도 지역주민들의 봉사를 위해 할 만하다 하여 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하였으며 체육회 임원활동도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기본적인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부족한 도시지만 사람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다 보니 내가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할 여력도 생기는 등 세종시에서의 2년 여의 정착기는 지금 생각하면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세종에서 정 붙이고 사는 것은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 단지내 주민과 크게는 세종시민 전체의 공동체의 보살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우리집은 2년이 위험한 기간이다. 28번의 역마살이 발동할 시기인 것이다. 이런 역마살이 발동할 때 쯤 세종특별자치시 공동체지원센타(지금은 사회적경제공동체센타로 변경)의 시민주권대학을 인근 주민이 알려주어서 알게 되어 입학하여 수료하고 마을활동가로 활동하였다. 지금은 주민자치지원가로 지역주민들이 주민자치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올 해 10월이 되면 세종에 이사온지 7년이 된다. 우리 마눌님과 나는 아직 세종이 좋아서 떠날 생각이 없다. 지금의 세종시는 처음 이사 올 때 와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다. 초창기의 불편함은 거의 해소되었고 미래을 향한 첨단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다.

역마살이 낀 우리 가족이 세종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명확하다. 공동체 활동을 위해 준비된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이런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주민센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이용하는 사람이 없고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화된 지원부서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사회적경제 공동체지원센터는 신도시로 전입해 온 사람들이 낮선 환경에서 공동체와 어울려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좋은 제도적인 장치이다.

손자들은 호수공원에 마실가면 집보다는 호수공원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자전거도 타고 모래밭에서 모래장난도 하고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손자들은 세종에 할아버지 보러 가자고 하면 저녁에 잠을 자질 못한다고 한다. 이제 세종시가 제2의 고향이 되어간다

앞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역마살이 있던 우리 가족이 세종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살고 있는 가락아파트 주변에 있는 실개천은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저녁먹고 마눌님과 이 실개천을 한시간 정도 산책하고 올 예정이다,

세종시 사람들이 좋다.

세종이 좋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1587257896563-0.jpg temp_1619394687063.1617320731.jpeg